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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사회

이건희 회장 별세, 그의 발자취를 알아보자

by 이슈 다 모여 issue 2020. 10.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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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재계의 상징, 이건희가 향년 78세의 나이로 별세했다. 이건희는 대구 출신으로서 1947년생이다. 이건희 회장이 태어났을 적, 아버지인 이병철 회장은 한창 사업을 운영중이었다고 한다. 이건희 회장은 젖을 떼자마자 어머니의 품에서 떨어져 할머니의 손에서 3살까지 자라게 됐다고 한다. 이후 이병철 회장의 사업 확장으로 6살이 되어서야 온 가족이 모여서 서울에서 살게 되었다고 한다. 그렇지만 한국전쟁 발발로 인해 다시금 피난살이를 하게 됐다고 한다. 그뿐만 아니라 이건희 회장은 3년 정도 일본 생활을 하기도 했었다. 일본에서 생활할 때 책과 영화에 푹 빠져서 지냈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걸까? 이건희 회장은 말수도 적고 혼자 사색하는 시간을 자주 갖곤 했었다고 한다. 1989년 이건희 회장은 한 언론사와의 인터뷰에서 "떨어져 사는게 버릇이 되어 내성적이게 됐고 술도 못 마셔서 혼자 있게 됐고 그러다보니 깊은 생각도 자주하게 됐다" 고 말하기도 했다. 내성적인 탓에 이건희 회장의 어린시절에 대해서는 크게 알려진 바가 없다.

 

 

 

그렇지만 고 홍사덕 국회부의장을 통해 이런 이야기는 있었다. 홍사덕 국회부의장과 이건희 회장은 60년 지기로 알려져있다. 같은 서울사대부고 출신이라고 한다. 이건희 회장은 항상 깊은 생각에 빠져있었다고 한다. 친구들이 무슨 말을 하더라도 "응, 아니" 로만 대답을 했다고 한다. 그만큼 혼자만의 생각으로 사색을 많이 했다는 반증이 되겠다. 그러다보니 고등학생 시절 이건희 회장의 통찰력은 남달랐다고 한다. "미국에서 차관을 많이 들여와야지 미국과의 이해관계도 좋아지고 그러다보면 우리의 안보도 튼튼해진다" 혹은 "공장으로 일자리를 많이 만들어내는게 진정한 애국이다" 와 같은 말을 던졌다고 한다. 그리고 이건희 회장은 홍사덕 국회의장에게 "일본어를 공부해봐라" 라고 전했다고 한다. 당시 반일감정이 팽배했을 때였지만 이건희 회장은 오히려 "일본의 변화를 살펴봐야 우리가 갈 길을 찾게 된다" 고도 말했다고 한다.

 

 

 

 

이런 범상치 않은 고교시절을 보내고 이건희 회장은 연세대학교 경제학과에 입학했다고 한다. 그렇지만 이병철 회장의 조언에 따라 자퇴하고 일본 와세다 대학과 미국 조지워싱턴 대학으로 떠났다고 한다. 유학을 마치고 돌아와 66년에는 동양방송에 입사를 했다고 한다. 이후 78년에는 삼성물산 부회장을 맡았고 79년에는 삼성 부회장을, 그리고 87년에는 삼성 회장까지 올랐다고 한다. 그때부터 이건희의 삼성이 시작된 것이다. 보는 시각에 따라 다를 순 있겠지만, 이건희 회장이 대한민국 경제에 어마어마한 공이었던 것은 사실이다. 공 정도가 아니고 한 획을 그은 큰 별이 진 셈이다. 이건희 회장이 많은 우여곡절을 견디며 일궈낸 삼성그룹을 후대에서 잘 이끌어주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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